낡은 옷을 입고 말하기 

약속시간이 다 되어간다. 그는 옷을 고른다. 오늘 약속에서 그는 몇 달 전에 있었던 울음에 대한 이유를 설명을 하기로 했다.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즐거워야 할 회식자리에서, 30년 가까이 일해 온 자신의 모습이 문득 떠오른 게 화근이었다. 울음이 터져버려서 참을 수 없게 되자 일단 잠적해버렸는데, 벌써 몇 달이나 지나 버린 것이다. 울음의 영문을 알 수 없는 동료들과 생중계를 시청하던 사람들은 약속장소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에게 어울리는 옷은 많았지만, 오늘 그 장소에 입고 갈만한 옷은 약속날짜를 정하면서부터 내심 정해져 있었다. 반듯한 정장들은 신뢰를 주지만 내면을 숨기기 위한 옷 이었다. 그것들은 일정한 양식들이 있어서 약간의 변화를 가졌다고 해도 정장의 몸짓을 그대로 지닌다. 이것은 약속의 옷이고 신뢰의 옷이며 약간의 변화들을 알아 맞춰야 하는 암호로 된 옷이다. 화려한 옷은 오해의 옷이다. 색과 프린트의 문구들이 의미와 기분을 내 입이 아닌 각자의 입으로 말하고 다니기 때문이다. 자칫 그가 모르는 언어로 "뭔가 숨기고 있어"라고 큼지막하게 프린트된 티셔츠를 입고 약속장소에 가서 이야기를 하게 될 수도 있다. 언어를 해석할 수 있는 사람들이 오늘 생중계될 약속을 보기라도 한다면 코미디가 된다. 이제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그는 30년 가까이 입었던 낡은 옷을 입고 있다. 사람들은 오래된 그의 옷이 애초에 어떤 모양과 색을 가졌던 것 인지 알 수는 없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낡은 옷을 입고 온 사람의 사연이 더욱 궁금해졌다. 사람들은 천천히 움직이는 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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