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재를 체험하기 위한 맹인 안마사의 이야기 기계

A Blind Masseur’s Story Machine for Experiencing the Real

이임수-미술비평가

나무와 모터를 가지고

양정욱은 나무와 모터를 가지고 스토리텔링을 시도한다. 그는 디지털 기술이 일상화된 오늘날 매스미디어와 퍼스널 미디어가 간과한 직접적이고 직관적인 소통의 방식을 매우 독특한 미디어를 사용하여 모색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공유하기 위해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사용한다면, 양정욱은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나무와 모터로 움직이는 입체 작품들을 만들었다. 말이나 글보다는 움직이는 기계가 그에게 스토리텔링의 미디어가 된다. 그의 나무 기계들은 산업사회의 합리성과 자동인형의 기이함을 동시에 지닌 채 이야기를 펼친다. 지난 14일까지 OCI미술관에서 열린 <양정욱 : 은퇴한 맹인 안마사 A씨는 이제 안마기기를 판다>에서는 2개의 큰 기계와 5개의 소품이 전시되었다. 작가는 안마사 A씨가 이 기계들을 만들었다는 상상의 서사를 부여함으로써 이 대상들의 위치는 모호해진다. 우선 이 기계들은 다양한 인물들의 상황을 고려하여 맞춤 제작되었다. 안마사가 직접 사람들의 몸을 주무르고 대화하며 그들의 신체적 정신적 고단함을 달래 주던 것을 대신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상들은 도구적 측면을 지닌다. 다른 한편으로 기계들은 서로 다른 구조와 운동을 통하여 사용자의 특수한 활동과 신체적 경험을 암시하고 있다. 재현물인 동시에 감각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미적인 측면을 포함하고 있다. 작가는 사용가치와 미적가치를 교묘하게 결합해 하나의 서사를 담은 대상을 만들고, 이야기로부터 대상의 움직임을 만들고자 한다. 양정욱은 순간적인 직관과 지속적인 시간이 작품의 중요한 요소라고 말한다. 두 요소는 현대 미술사에서 서로 화해할 수 없는 양극단에 위치했었다. 작품의 지위와 미적 경험에 큰 전환을 가져왔던 미니멀리즘 논쟁에서 마이클 프리드가 미니멀 조각을 예술품의 지위에서 사물의 지위로 타락했다고 비판한 요점이 바로 순간적인 직관으로 이뤄지는 미적인 확신과는 대조되는 실제 공간, 지속된 시간 속에서의 경험이라는 상황이었다. 양정욱은 현대미술에서 서로 상충되는 요소로 규정되었던 자질을 포괄하면서 자율적 미술 매체의 지위를 넘어 문학적인 서사를 만드는 소통 도구를 만들었다. 그의 그의 작품은 삶으로부터 온 미디어에 다름 아니다. 이런 점에서 굳이 작품의 계보를 따지자면 자율적 미술 매체에 대한 저항과 예술과 기술의 관계가 중첩되는 지점에서 찾는 것이 타당하다. 나무와 모터로 구축된 그의 기계는 인간 삶의 기술적 대상으로부터 온 것이며 특수한 삶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소통 도구와 미적 매체의 구분을 초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도구성으로부터 탈피하고 있다. 작가가 보여주는 탈피의 방법은 두가지이다.

첫째, 나무라는 자연적이고 우연적인 재료를 사용한다. 나무는 산업사회의 합리성과 도구성이 긴밀히 연결되는 기계의 냉정함에 수공적인 감수성 같은 것을 덧씌운다. 그 결과 안마기계는 몸에 더 가까워진다. 둘째, 모터와 부품들을 매우 단순하게 결합한다. 관객은 작품 구조와 움직임을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이를 하나의 시간적인 서사로 읽는다. 그렇다면 나무와 모터를 가지고 시도된 스토리텔링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상상과 실재 공간 사이에서

맹인 안마사 A씨의 기계는 하나의 몸으로서 실재 공간에서 움직이며 말을 건다. 안마 기계는 실재 공간에서 우리 몸을 재현하고 그 현존을 일깨우는 장치다. 이 장치의 신체성은 시각과 촉각으로 동시에 지각되는 대상의 현존과도 연결된다. 몸을 통해 습관적으로 지각된 세계가 바로 우리의 현상학적인 현존을 이룬다는 개념은 앞서 언급된 미니멀리즘의 관점과도 공유된다. 이때 실재 공간과 거기에 놓여 있는 구체적인 대상, 그 대상을 경험하는 주체가 작품의 중요한 요소로 대두된다. 양정욱은 평면이 아닌 입체 작업을 하는 이유를 작품을 통해 하나의 관찰로부터 이야기를 이끌어내고 이미지를 움직이는 하나의 대상으로 실재화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기계와 기술에 대한 작가의 사유가 작품에 투영되고 있다. 그가 만든 기계는 디지털 기술의 대상이 아니라 역학적 기술의 대상이다. 이 기계는 실재 공간 안에 견고한 사물로 놓인다. 부분들은 물리적인 힘의 교환 관계로 서로 연결되고, 원운동과 직선운동의 상호 전환을 통해 특정한 신체적인 움직임을 표현한다.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사랑하는 사람의 어깨를 안마기기는 잘 모른다’는 안마를 하는 기계 혹은 안마를 받는 몸통을 연상시키는 높이 2m 50cm에 이르는 대형 구조물이다. 수직의 기둥형 목 골조에 모터를 단 4단의 원형 수평 구조물이 위에서 아래로 크기가 작아지면서 부착되어 있고 각층이 나무 골조와 끈 등으로 연결되어 있다. 모터의 움직임에 따라 끈과 연결된 굽은 막대가 이완과 긴장을 반복한다. 작품 앞에서 관객은 기이한 나무 기계의 움직임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내고자 한다. 기계시각적, 촉각적, 청각적 요소를 통하여 이야기를 전달한다. 시각을 통해 즉각적으로 파악된 형태와 구조는 작품이 작동하는 방식을 인지케 하며, 이때 인지된 움직임은 시각적이라기보다는 몸 전체를 개입시키는 촉각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뼈, 인대, 근육, 그리고 여러 감각기관을 모방한 기계뜰은 모터의 움직임, 소리, 진동 등으로 다양한 감각을 동시에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 기계들은 맹인 안마사 A씨가 세상을 지각하는 방식을 고스란히 재현해 낸다. 그는 손으로 감지되는 대상의 상태, 몸을 통해 지각하는 공간, 청각으로 입력되는 정보들로 자신만의 상상의 세계, 상상의 대상을 만든다. 양정욱의 기계가 실재 공간을 차지하고 강력한 구체성을 지님에도 불구하고 상상의 차원으로 후퇴해 가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 이야기 기계라는 점에 있다. 결국 안마 기계들이 상상과 실재 공간 사이에서 말을 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누군가에게 말을 걸기 위해 사용하는 디지털 기기가 가상공간을 경유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작가의 기계는 실재 공간에 견고하게 놓인 모습으로 관객들을 상사으이 공간으로 이끈다. 바닥 위에 바로 놓인 작품을 비추는 빛과 그림자는 그것을 둘러싼 실재 공간을 상기시키는 요소들이다. 그러나 작품과 관객의 대화가 시작되면서 이것이 실재성의 효과를 위한 장치임이 판명난다. 전시된 소품들을 담고 있는 투명 쇼케이스처럼, 이 빛과 그림자도 상상의 공간을 구축한다. 실재 공간에서의 움직임이 이렇게 상상의 영역으로 미끄러지는 것은 작가가 결국에는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움직임으로 전하다

양정욱이 안마 기계 작업에서 보여주려는 것처럼 실재는 체험되는 것이다. 그러나 실재는 언어로 상징화되거나 이미지로 치환될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통하지 않고는 온전히 파악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는 구조적 직관성을 통하여 누구나 과정(이야기)을 상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작품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현실의 상징체계에 속해 있는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언어로 소통되는 이야기를 시간적 과정으로 물질화시켜서 직접적이고 직관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고자 한다. 다시 말해 이야기를 움직임을 통하여 전하고자 하는 작업이 핵심이다. 언어로 상징화된 이야기, 실재적 현존, 상상적인 표현의 차원들이 마구 뒤얽혀 있기 때문에 양정욱의 기계는 기이한 환상의 신체도, 합리성의 기계장치도 아닌 이상한 것이 된다. 이 이상한 기계는 이야기 기계이다. 작품 제목에서 제시하는 문장으로 부터 기계가 전하는 이야기가 시작된다. 예컨대 ‘그는 연휴에 운행하는 지하철 기관사이다’, ‘그녀는 집에 돌아오면 귀에서 어떤 소리가 멈추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수술을 앞둔 어느 가장이었다’ 등은 모두 특정 캐릭터가 처해 있는 구체적인 상황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 기계의 강렬함을 결정짓는 것은 바로 실재와 상상 사이에 만들어지는 균형이다. 작가는 이것을 ‘직관성, 이야기, 효과 사이의 긴장과 균형’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이는 안마사 A씨의 기계가 도구성을 탈피하기 위한 조건이 되기도 한다. 그의 기계는 안마하는 기계이면서 문학적인 임무를 수행하고 감각적 체험을 제공하는 미학적 기계이기도 하다. 따라서 작가는 이 기계로부터 팽팽한 관계의 확장과 함께 감각과 의미의 측면에서 다변화를 꿈꿀 수 있게 된다. 도구성에서 탈피한 안마 기계는 언어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이야기를 물리적 공간에서 움직임을 통하여 현실로 끌어낸다. 이 기계는 관객을 맞이하면서 상상의 유사 생명체가 아닌 실재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 즉 언어적 서사가 된다. 이야기 기계는 디지털 기기와 네트워크 상에서 만들어지는 흘러가버리는 이야기와는 다른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야기를 구사한다. 인간의 경험과 기억이 말로 전승되던 아주 오래전부터 되풀이되는 이야기처럼 그것은 우리에게 체화된 반복 구조를 통하여 하나의 관찰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를 움직임으로 전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작업은 상상 이미지와 실재적 현존에 상징적 언어 측면이 추가될 수 있다. 이는 이미 작품에서 제목이 캡션 기능을 하는 사실에서 예견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관찰로부터 출발한 이야기와 움직임뿐만 아니라 포괄적인 상징체계에 대한 사유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와 움직임이 작품에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작품의 구조와 움직임, 그리고 작품이 차지하는 공간의 의미들은 또 다른 차원으로 이동할 것이다.

© 2017 by StudioCHICOO